농담으로 쓴 책이 학문의 논쟁거리가 되기까지
로렌스 J. 피터(1919~1990)는 캐나다 출신 교육자이자 저술가로, 학교 현장과 대학에서 가르친 경력이 있습니다. 그는 레이먼드 헐과 함께 《The Peter Principle》을 썼고 1969년 윌리엄 모로 출판사에서 나왔습니다. 책 대부분은 헐이 썼으며 풍자로 기획됐습니다. 책의 핵심 문장은 "위계 조직에서 모든 직원은 자신의 무능력 수준까지 올라가는 경향이 있다"이고, 이어지는 따름 정리는 "시간이 지나면 모든 자리는 그 일을 해내지 못하는 사람이 채우게 된다"입니다.
책에는 승진이 막힌 사람을 다루는 재치 있는 용어도 나옵니다. 위로 올려 보내는 척 다른 비생산적인 자리로 옮기는 것을 '타격적 승화'(percussive sublimation), 그냥 옆으로 옮기고 직함만 길게 붙이는 것을 '수평 아라베스크'(lateral arabesque)라고 불렀습니다. 훗날 스콧 애덤스의 '딜버트의 법칙'(무능한 사람을 업무 흐름에서 빼내려고 관리직으로 올린다)도 이 책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알려집니다.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원인이 다릅니다. 피터의 법칙은 '유능해서 올라갔다가 멈춘다', 딜버트의 법칙은 '무능해서 치워진다'는 해석입니다.
승진 규칙이 만드는 구조
피터의 법칙이 성립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후 모형 연구들의 공통된 설명입니다.
- 승진 기준이 현재 직무의 성과다. 조직은 눈에 보이는 성과가 좋은 사람을 올립니다.
- 한 직급의 성과가 다음 직급의 성과를 충분히 예측하지 못한다. 영업, 개발, 진료 같은 실무 능력과 사람을 이끌고 조율하는 능력은 서로 다른 재능입니다.
이 두 조건이 겹치면 승진은 계속 이어지다가, 새 직무에 맞지 않는 사람이 나오는 순간 멈춥니다. 문제는 그 뒤입니다. 승진을 멈춘 사람이 조직에 그대로 머무르는 경우가 많아서 시간이 갈수록 각 직급에 '한계 지점에 이른 사람'이 쌓일 수 있다는 것이 책이 던진 걱정이었습니다. 이 흐름은 위 카드의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와 '피터의 고원' 설명과 이어서 읽으면 좋습니다.
가상 예시, 팀장이 된 에이스
아래는 이해를 돕기 위한 가상 예시이며 실제 인물이나 회사가 아닙니다. 한 회사의 영업 1위 직원 A는 혼자 거래처를 설득하는 데 탁월해 팀장으로 올랐습니다. 새 직무는 팀원의 약점을 파악해 코칭하고, 성과 평가에서 갈등을 조율하고, 팀 목표를 나누는 일입니다. A는 자신이 잘하던 영업 업무를 직접 처리하다 시간이 부족해지고, 팀원은 지시만 받는다고 느낍니다. 회사는 A를 팀장 자리에서 내리면 체면이 깎인다고 판단해 그대로 두고, 팀 실적은 서서히 떨어집니다. 이 시나리오에서 문제는 A의 능력이 아니라 '영업 능력을 근거로 관리 능력을 판단했다'는 승진 규칙에 있습니다. 그래서 해법도 사람을 탓하기보다 규칙을 바꾸는 쪽에서 찾게 됩니다.
논문으로 따져본 피터의 법칙
사례 1. 영업직 승진 자료 분석(벤슨·리·슈, 2019)
앨런 벤슨, 대니얼 리, 켈리 슈는 기업의 영업직 인사 자료를 이용해 승진 결정을 분석했고, 결과는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2019)에 실렸습니다. 분석에는 131개 기업의 영업직 인사 자료가 쓰였습니다(논문 초록 기준). 영업 실적이 높은 직원일수록 승진 확률이 올라갔지만, 승진한 사람이 맡은 부하 직원들의 실적은 낮아지는 경향이 관찰됐습니다(구체적 비율은 논문 본문에서 확인하세요). 연구진은 회사가 관리 능력을 더 잘 예측하는 다른 특성보다 현재 성과를 우선하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다만 이것이 곧 잘못된 선택이라고만 단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승진이라는 보상이 직원의 노력을 이끌어내는 이점이 비용을 상쇄할 수도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고 함께 밝혔습니다.
사례 2. 통계적 착시라는 설명(라지어, 2004)
에드워드 라지어는 《Journal of Political Economy》(2004)에 실린 논문에서 승진 후 성과가 떨어지는 현상이 평균으로의 회귀로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승진은 이전 직무에서 높은 성과를 냈다는 증거인데, 성과에는 운과 측정 오차가 섞여 있으므로 승진한 사람의 평균 능력은 그보다 낮게 나타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입니다. 합리적인 회사라면 이를 예상해 승진 기준을 높이고, 그래도 현상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같은 현상이 영화 속편이 첫 편보다 아쉬운 이유에도 쓰입니다. 이 관점에서는 피터의 법칙이 반드시 조직의 실수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라지어는 또 승진 후 노력이 줄어드는 설명이 보상 구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사례 3. 무작위 승진이 낫다는 시뮬레이션(플루키노 연구진, 2010)
이탈리아 카타니아대학의 알레산드로 플루키노, 안드레아 라피사르다 등은 《Physica A》(2010)에서 승진 규칙의 효율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비교했습니다. 가장 성과가 좋은 사람을 올리고, 직급마다 능력의 연속성이 약하다는 조건을 두면 피터의 법칙이 필연적으로 나타났고, 이를 피하는 방법으로 무작위로 승진시키거나 최고와 최저 구성원을 무작위로 함께 승진시키는 규칙이 제시됐습니다. 이 연구는 2010년 이그노벨상 경영학상을 받았습니다. 이그노벨상은 엉뚱하지만 생각해볼 만한 연구에 주는 상이고, 이 결과는 모형의 가정 안에서의 결론이지 실제 기업에 무작위 승진을 권하는 것이 아닙니다.
| 관점 | 방법 | 주요 주장 | 한계 |
|---|---|---|---|
| 피터·헐(1969) | 풍자적 사례 관찰 | 누구나 무능력 수준까지 승진한다 | 통제된 검증이 아님 |
| 벤슨·리·슈(2019) | 영업직 실제 인사 자료 | 현재 성과 중심 승진, 부하 성과 하락 경향 | 영업직 중심, 다른 직무 일반화 주의 |
| 라지어(2004) | 이론 모형 | 회귀 효과로 승진 후 하락이 나타날 수 있음 | 모형의 가정에 의존 |
| 플루키노 외(2010) | 컴퓨터 시뮬레이션 | 직급 간 능력이 이어지지 않으면 법칙이 성립 | 현실 기업 검증이 아님 |
조직은 어떻게 대응해왔나
- 이원 경력 경로. 관리자와 전문가 두 갈래 트랙을 두어 전문가로 남아도 직급과 보상이 오르게 합니다. 연구개발 조직이 뛰어난 과학자를 붙잡으려 1950년대부터 쓴 방식으로 알려져 있고, IT 업계에서는 스태프, 프린서펄, 펠로 같은 전문가 직급으로 흔히 나타납니다.
- 승진 전 시험 운영. 대리 직책을 맡기거나 프로젝트 리더 역할을 먼저 경험하게 해서 관리 역량을 확인합니다.
- 관리 역량 교육과 평가. 현재 성과가 아니라 코칭, 조율, 의사소통 능력을 별도로 평가합니다.
- 되돌아갈 길 열기. 관리직이 맞지 않으면 불이익 없이 전문가 역할로 돌아가는 제도입니다. 실무 현장에서 가장 구현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참고로 '업 오어 아웃'(승진하지 못하면 떠나는 방식)을 운영한 대표적 사례로 미국 로펌의 크래버스 시스템이 거론됩니다. 이 방식은 한계 지점에 머무는 사람을 줄이려 하지만, 반대로 전문가로 남고 싶은 사람에게는 압박이 될 수 있습니다.
승진 제안을 받았을 때 던져볼 질문
- 새 역할의 하루 일과에서 지금 하는 일은 몇 퍼센트이고, 새로 하는 일은 무엇인가?
- 그 새 일(사람 관리, 예산, 갈등 조율)을 해본 적이 있는가, 해보고 싶은가?
- 전문가 트랙처럼 같은 수준의 보상을 받는 다른 길이 회사에 있는가?
- 맞지 않을 경우 일정 기간 뒤에 원래 역할로 돌아갈 수 있는가?
- 필요한 역량을 배울 교육이나 멘토가 지원되는가?
관리자라면 반대로 '이 사람의 실적'이 아니라 '새 역할에 필요한 행동을 이미 보여준 적이 있는가'를 승진 근거로 적어보는 방법이 도움이 됩니다. 커리어 전환이나 직무 선택을 더 폭넓게 생각해보려면커리어 로드맵도 참고해보세요.
흔한 오해와 정정
- 오해: 모든 사람이 결국 무능해진다. 실제: 책은 풍자이고, 조직의 승진 규칙에 따라 일어나는 경향을 설명한 것입니다.
- 오해: 승진한 사람의 능력 문제다. 실제: 개인이 아니라 평가 기준의 문제라는 해석이 연구의 중심에 있습니다.
- 오해: 연구로 입증된 법칙이다. 실제: 일부 자료에서 비슷한 패턴이 관찰됐지만 모든 조직·직무에 확인된 법칙은 아닙니다.
- 오해: 관리자가 되지 않고 전문가로 남는 것이 실패다. 실제: 전문가 트랙을 공식 경로로 두는 조직이 많습니다.
한계와 열린 질문
벤슨 연구는 영업직에 초점을 둔 자료라 개발자, 의사, 교사 같은 직종에서 같은 결과가 나오는지는 별도로 봐야 합니다. 또 현재 성과로 승진시키는 규칙이 비합리적인지, 아니면 동기 부여라는 이점이 비용을 넘는 것인지는 학계에서도 열려 있는 질문입니다. 라지어의 회귀 설명은 같은 데이터를 '실수 없는 합리적 결과'로 읽을 수 있음을 보여주며, 시뮬레이션은 가정이 바뀌면 결론도 달라집니다. 즉 피터의 법칙은 법칙이라기보다 승진 설계를 점검하게 해주는 렌즈에 가깝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피터의 법칙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인가요?
모든 사람이 반드시 이 과정을 겪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조직의 승진 구조가 현재 성과만으로 다음 역할의 적합성까지 판단하는 방식일 때 나타나기 쉬운 경향을 설명한 것으로, 관리 역량을 함께 검증하는 조직에서는 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내가 이런 상황에 처했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새로운 역할에서 부족함을 느낀다면, 그 역할에 필요한 역량을 별도로 학습하거나 코칭을 받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또는 조직에 이원 경력 경로가 있다면, 관리자 대신 전문가 트랙으로 옮기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피터의 법칙과 딜버트의 법칙은 어떻게 다른가요?
피터의 법칙은 유능한 사람이 승진하다가 한계에서 멈춘다는 설명이고, 딜버트의 법칙은 무능한 사람을 업무에서 빼내려고 관리직으로 보낸다는 풍자입니다. 승진의 원인이 능력이냐 제거냐의 차이입니다.
피터의 법칙이 실제로 확인된 적이 있나요?
영업직 승진 자료를 분석한 연구에서 현재 성과가 높을수록 승진 가능성이 높고 그 사람이 관리자가 된 뒤 부하 직원의 성과가 낮아지는 경향이 보고됐습니다. 다만 한 직종의 자료이며, 같은 현상이 통계적 회귀로 설명될 수 있다는 이론도 있어 해석은 열려 있습니다.
승진을 거절하면 불이익이 있나요?
회사마다 다릅니다. 제도로 보장된 전문가 트랙이 있는지, 거절이 평가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는 사내 규정과 상사에게 확인해야 합니다. 일반적인 정보이며 개별 고용 계약은 해당 조건을 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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