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총정리

선사시대·고조선부터 현대까지 핵심 사건 112가지를 여섯 시대로 나눠 정리했습니다. 각 사건에는 연대가 어떤 근거에 기대고 있는지를 함께 적어, 외우기 전에 '얼마나 믿을 수 있는 연대인가'부터 볼 수 있게 했습니다.

한눈에 보기

한국사는 약 70만 년 전 구석기 유적에서 시작해 오늘날의 대한민국까지 이어지는 긴 이야기입니다. 이 페이지는 그 흐름을 여섯 시대, 112개 사건으로 나누어 보여 줍니다. 목표는 연도를 많이 외우는 것이 아니라, 사건마다무슨 일이 있었고, 그 연대는 어떤 근거에서 나왔고, 뒤의 역사에 무엇을 남겼는지를 구분해서 읽는 것입니다. 아래 카드는 시대 순서대로 놓여 있으니 위에서 아래로 읽으면 한 편의 연표가 됩니다.

여섯 시대를 한 표로 보기

시대 구분은 학자와 교과서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이 페이지는 학습에 널리 쓰이는 구분을 따랐습니다. 아래 표의 '첫 사건'과 '마지막 사건'은 이 페이지에 실린 사건 가운데 기준이며, 그 시대의 전부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시대실린 사건이 페이지의 첫 사건이 페이지의 마지막 사건흐름 한 줄
선사시대·고조선8개구석기시대와 한반도 최초의 인류철기 문화의 확산과 여러 나라의 성장도구와 생활 방식이 바뀌며 국가가 생겨나는 과정
삼국·남북국시대20개신라의 건국발해의 멸망고대 국가들의 경쟁, 외세와의 전쟁, 통일과 분립
고려시대17개왕건의 고려 건국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건국새 왕조의 체제 정비, 외침, 무신 집권과 원의 간섭
조선시대20개조선의 건국과 한양 천도병인양요와 신미양요유교 국가의 건설과 두 번의 큰 전란, 후기의 변화
개항기·일제강점기26개강화도조약8·15 광복개항 이후의 개혁과 위기, 국권 상실과 독립운동
해방 이후·현대21개광복과 미소 군정, 38선 분할2018년 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선언분단과 전쟁, 민주화와 경제 성장, 남북 관계

개항기부터 현재까지의 근현대에 실린 사건이 47개로 40%를 넘는 것은 사료가 풍부하고 오늘의 사회와 직접 이어지기 때문이지, 그 시기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고대·중세를 읽을 때는 사건 하나가 훨씬 긴 세월을 대표한다는 점을 기억하세요.

연대의 근거: 같은 숫자도 무게가 다릅니다

역사 연표에 적힌 숫자는 모두 같은 종류의 정보가 아닙니다. 이 페이지의 사건을 근거별로 세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근거 표시사건 수의미읽을 때 주의할 점
문헌 기록102개『삼국사기』·『고려사』 등 사서에 연대가 구체적으로 적힌 사건기록이 있다는 뜻이지 기록자의 관점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후대에 편찬된 책일수록 교차 확인이 필요합니다.
전승 연대4개건국 설화처럼 후대에 기록된 전승이 전하는 연대고고학적으로 확정된 연도가 아닙니다. 국가 형성은 대체로 더 늦게 봅니다.
고고학적 추정3개유적·유물을 분석해 학계가 추정한 시기'경'이 붙는 범위 값이며, 새 발굴로 바뀔 수 있습니다.
학계 통설3개여러 사료를 종합해 폭넓게 받아들여지는 시기통설도 연구가 진행되면 조정될 수 있습니다.

선사시대·고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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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시대와 한반도 최초의 인류

약 70만 년 전~ (고고학적 추정)

무슨 일이 있었나요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 인류가 살기 시작한 시기로, 뗀석기를 사용하고 동굴이나 막집에서 무리 지어 이동생활을 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경기도 연천 전곡리, 충남 공주 석장리 등의 유적으로 확인되는 한반도 인류사의 출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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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시대 - 농경과 정착생활의 시작

기원전 8000년경~ (고고학적 추정)

무슨 일이 있었나요

간석기와 빗살무늬토기를 사용하고, 농경과 목축이 시작되면서 강가·바닷가에 정착해 마을을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이동생활에서 정착생활로 전환된 시기로, 서울 암사동 유적이 대표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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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시대의 시작

기원전 2000~1500년경 (고고학적 추정)

무슨 일이 있었나요

비파형동검과 거친무늬거울 등 청동기가 사용되고, 벼농사가 확산되었으며, 잉여생산물을 둘러싼 계급 분화가 나타나 고인돌 같은 대규모 무덤이 만들어졌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사유재산과 계급이 발생하고 군장(족장)이 다스리는 사회로 나아가면서, 이후 고조선 등 국가 성립의 토대가 된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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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의 건국

기원전 2333년 (전승) (전승 연대)

무슨 일이 있었나요

단군왕검이 세웠다고 전해지는 우리 역사상 최초의 국가로,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만주 요령 지역과 한반도 서북부에 성장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삼국유사』에 실린 단군신화가 전하는 건국 연대로, 실제 고조선이라는 정치체가 이 시점부터 존재했음을 고고학적으로 확정할 수는 없지만, 한민족 최초의 국가로서 역사 교육의 출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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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의 8조법

기원전 4~3세기경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하고, 남에게 상해를 입힌 자는 곡식으로 배상하며, 도둑질한 자는 노비로 삼는다는 등의 내용이 중국 『한서』 지리지에 일부 전합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생명·사유재산을 중시하고 노비 제도가 있었던 고조선 사회의 성격을 보여주는 우리나라 최초의 성문법 관련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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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만조선의 성립

기원전 194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중국 연나라에서 망명한 위만이 고조선의 준왕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라 철기 문화를 본격적으로 수용하며 국력을 키웠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중계무역으로 성장해 한나라와 대립할 만큼 강성해졌으며, 이 성장이 결국 한나라의 침공을 부르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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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의 멸망과 한사군 설치

기원전 108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한 무제의 침공으로 왕검성이 함락되며 고조선이 멸망했고, 한나라는 옛 고조선 땅에 낙랑군 등 4개의 군현을 설치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한민족 최초 국가의 멸망이자, 이후 여러 소국이 성장해 삼국시대로 이어지는 전환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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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기 문화의 확산과 여러 나라의 성장

기원전후~기원후 3세기경 (학계 통설)

무슨 일이 있었나요

고조선 멸망 전후로 만주와 한반도 각지에서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삼한(마한·진한·변한) 등 여러 소국·연맹체가 성장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이 소국들 가운데 고구려·백제·신라가 삼국으로 성장해나가는 삼국시대 이전의 기반이 되는 시기입니다.

삼국·남북국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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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건국

기원전 37년 (전승) (전승 연대)

무슨 일이 있었나요

주몽(동명성왕)이 부여에서 남하해 졸본(오늘날 중국 랴오닝성 환런) 지역에 세웠다고 전해지며, 이후 국내성으로 도읍을 옮겼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삼국사기』가 전하는 건국 연대이며, 실제 국가 체제 정비는 이보다 다소 늦게 이뤄졌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 견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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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건국

기원전 18년 (전승) (전승 연대)

무슨 일이 있었나요

고구려 시조 주몽의 아들로 전해지는 온조가 한강 유역 위례성(오늘날 서울)에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삼국사기』가 전하는 건국 연대이며, 백제 왕실이 고구려 계통 부여씨임을 보여주는 건국 설화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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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건국

기원전 57년 (전승) (전승 연대)

무슨 일이 있었나요

박혁거세가 경주 지역 사로국을 세웠다고 전해지며, 이후 주변 소국을 병합하며 성장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삼국사기』가 전하는 건국 연대이나, 실제 신라가 중앙집권국가 체제를 갖춘 것은 4세기 이후로 보는 것이 학계 통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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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근초고왕의 전성기

4세기 후반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마한 잔여 세력을 통합하고 고구려를 공격해 고국원왕을 전사시키는 등 백제의 영역을 최대로 넓혔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백제가 삼국 중 가장 먼저 전성기를 맞이한 시기로, 중국 동진·왜와 교류하며 국제적 위상을 높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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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소수림왕의 체제 정비 - 불교 공인, 태학 설립, 율령 반포

372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중국 전진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이고, 국립교육기관인 태학을 세웠으며, 국가 운영의 기본 법률인 율령을 반포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삼국 중 가장 먼저 중앙집권적 고대국가 체제를 정비해, 뒤이은 광개토대왕·장수왕 시기 전성기의 기반을 닦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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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의 정복활동과 영토 확장

391~412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백제를 공격해 한강 이북을 차지하고, 신라의 요청으로 왜의 침입을 격퇴했으며, 만주 지역까지 세력을 넓혀 고구려 최대 영토를 이루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아들 장수왕이 세운 광개토대왕릉비(414년)에 업적이 상세히 새겨져 있어, 삼국시대 중 가장 구체적인 1차 사료가 남아 있는 정복군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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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왕의 평양 천도와 남진정책

427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수도를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옮기고 남쪽으로 세력을 넓혀 백제의 수도 한성을 함락, 백제 개로왕을 전사시켰습니다(475년).

왜 알아야 할까요

고구려가 한강 유역을 완전히 장악하며 삼국 중 최대 판도를 이룬 전성기로, 이 사건을 계기로 백제는 웅진(공주)으로 천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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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법흥왕의 불교 공인 - 이차돈의 순교

527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불교를 국가 종교로 공인하고, 율령을 반포하며 신라의 중앙집권체제를 정비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삼국 중 가장 늦게 불교를 공인한 신라가 이를 계기로 국가 체제를 정비하고 이후 진흥왕대의 전성기로 이어지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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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진흥왕의 전성기 - 한강 유역 차지, 화랑도 정비

6세기 중반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백제와 연합해 고구려로부터 한강 유역을 빼앗은 뒤 동맹을 깨고 백제까지 밀어내 한강 유역을 독차지했으며, 화랑도를 국가적 조직으로 정비하고 순수비를 세워 영토 확장을 기념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한강 유역 확보로 중국과 직접 교류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이후 신라가 삼국 통일의 주도권을 쥐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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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 고구려 침입과 살수대첩

612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중국을 통일한 수 양제가 113만 대군으로 고구려를 침공했으나, 을지문덕이 살수(청천강)에서 적을 크게 무찔렀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고구려가 대제국 수의 침입을 물리쳐 동아시아의 강국으로서 위상을 지켰으며, 이 패전은 수 멸망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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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의 고구려 침입과 안시성 전투

645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당 태종이 직접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했으나, 안시성에서 성주와 백성들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철수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수에 이어 당의 침입까지 막아낸 고구려의 저력을 보여주지만, 이후 계속된 전쟁으로 고구려 국력이 소모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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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당연합군의 결성과 백제의 멸망

660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신라 김춘추(태종무열왕)가 당과 동맹을 맺어 나당연합군을 결성했고, 백제는 황산벌 전투에서 계백의 결사대가 패한 뒤 사비성이 함락되며 멸망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삼국통일 전쟁의 첫 단계로, 이후 백제 부흥운동(흑치상지 등)이 일었으나 결국 실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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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멸망

668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연개소문 사후 지배층의 내분이 겹친 상황에서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평양성이 함락되며 고구려가 멸망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700여 년간 존속하며 중국 여러 왕조의 침입을 막아낸 고구려의 멸망으로, 삼국 중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국가가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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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당전쟁과 신라의 삼국통일

676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백제·고구려를 멸망시킨 뒤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던 당나라를 신라가 매소성·기벌포 전투 등에서 물리치고 대동강 이남 지역을 통일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외세를 끌어들였다는 한계와 대동강 이남에 그친 불완전한 통일이라는 평가가 있지만, 우리 역사상 최초로 한반도 중남부를 하나의 국가로 통합한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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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건국

698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고구려 유민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이끌고 동모산(오늘날 중국 지린성 지역)에서 발해를 세웠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고구려 멸망 30년 만에 그 계승을 표방한 국가가 세워지면서, 신라와 발해가 남북으로 공존하는 남북국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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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의 체제 정비 - 9주 5소경, 국학 설치

7~8세기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전국을 9주로 나누고 지방 요지에 5소경을 두었으며, 유학 교육기관인 국학을 설치해 왕권 중심의 중앙집권체제를 정비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넓어진 영토와 늘어난 인구를 다스리기 위한 통치 제도를 확립해, 신라 중대(태종무열왕~혜공왕)의 안정과 번영을 이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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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전성기 - 해동성국

9세기 초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선왕 때 최대 영토를 확보하고 당으로부터 "바다 동쪽의 융성한 나라"라는 뜻의 해동성국이라 불릴 만큼 국력이 강성해졌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가 만주 대부분과 연해주까지 아우르는 대국으로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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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하대의 혼란 - 진골 귀족의 왕위 다툼과 농민 봉기

9세기 후반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진골 귀족들의 왕위쟁탈전이 이어지며 중앙 통제력이 약해졌고, 원종·애노의 난(889년)을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서 농민 봉기가 잇따랐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중앙집권체제가 흔들리며 지방 호족 세력이 성장해, 결국 후삼국 분열로 이어지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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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삼국시대의 시작 - 후백제와 후고구려 건국

900~901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견훤이 완산주(전주)에서 후백제를(900년), 궁예가 송악(개성)에서 후고구려를(901년, 훗날 태봉으로 개칭) 세우며 신라와 함께 세 나라가 다시 병립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신라 하대의 혼란을 딛고 새로운 국가들이 등장하며, 뒤이어 왕건의 고려 건국과 후삼국 통일로 이어지는 전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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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멸망

926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거란(요)의 침공으로 수도 상경성이 함락되며 발해가 멸망했고, 왕자 대광현을 비롯한 많은 유민이 고려로 망명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만주 일대를 지배하던 우리 민족계 국가가 사라진 사건으로, 이후 만주 지역이 우리 역사의 주무대에서 점차 멀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고려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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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건의 고려 건국

918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궁예의 신하였던 왕건이 궁예를 몰아내고 송악(개성)을 도읍으로 고려를 세웠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고구려 계승을 표방한 국호 "고려"를 내세워 신라·후백제와의 경쟁에서 민심을 얻는 명분으로 삼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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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후삼국 통일

935~936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신라 경순왕이 스스로 나라를 고려에 넘겨주었고(935년), 이듬해 후백제마저 정벌하며 왕건이 한반도를 다시 통일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신라·발해 유민을 함께 포용하며 진정한 민족 재통합을 이룬 사건으로 평가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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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종의 왕권 강화 - 노비안검법과 과거제 실시

956~958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억울하게 노비가 된 이들을 양인으로 되돌리는 노비안검법(956년)을 시행해 호족 세력을 약화시키고, 중국 후주 출신 쌍기의 건의로 과거제를 도입해(958년) 새로운 인재를 등용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건국 초 호족 연합적 성격이 강했던 고려를 국왕 중심의 중앙집권국가로 바꾸는 결정적 개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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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의 유교정치이념 확립

982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최승로의 시무 28조를 받아들여 유교를 정치이념으로 삼고, 전국에 12목을 설치해 지방관을 파견하며 통치체제를 정비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불교국가이면서도 유교적 통치 질서를 결합한 고려 특유의 국가 운영 틀이 이때 확립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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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요)의 침입 - 서희의 외교 담판과 강감찬의 귀주대첩

993~1019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거란이 세 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입했으나, 1차 침입 때 서희가 외교 담판으로 오히려 강동 6주를 확보했고(993년), 3차 침입 때는 강감찬이 귀주에서 거란군을 크게 무찔렀습니다(1019년).

왜 알아야 할까요

외교와 군사력을 모두 활용해 대제국 거란의 압박을 물리치고 고려의 자주성을 지켜낸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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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관의 여진 정벌과 동북 9성

1107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별무반을 이끈 윤관이 여진족을 정벌하고 동북 지역에 9성을 쌓았으나, 방어의 어려움으로 이후 여진에 돌려주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여진족은 이후 세력을 키워 금나라를 세우고 고려에 사대를 요구하는 등 국제 정세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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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서경천도운동

1126~1135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외척 이자겸이 왕권을 위협하는 난을 일으켰고(1126년), 이후 묘청 등 서경(평양) 세력이 금나라 정벌과 서경 천도를 주장하며 반란을 일으켰습니다(1135년).

왜 알아야 할까요

문벌귀족사회의 내부 모순이 드러난 사건들로, 뒤이은 무신정변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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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정변

1170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문신 위주의 차별대우에 불만을 품은 정중부 등 무신들이 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이후 약 100년간 무신들이 실권을 쥐는 무신정권 시대가 시작되며, 왕은 상징적 존재로 격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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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 무신정권의 성립

1196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최충헌이 정권을 잡은 뒤 4대에 걸쳐 최씨 가문이 교정도감 등을 통해 실권을 독점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무신정권 중 가장 안정적으로 오래 지속된 정권으로, 이 시기에 몽골의 침입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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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침입과 강화 천도, 삼별초의 항쟁

1231~1270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몽골이 여러 차례 고려를 침입하자 최씨 정권은 수도를 강화도로 옮겨 항전했으나(1232년), 오랜 전쟁으로 국토가 황폐해져 결국 개경으로 환도했고(1270년), 이에 반발한 삼별초가 강화도·진도·제주도를 옮겨 다니며 항쟁을 이어갔습니다(1270~1273년).

왜 알아야 할까요

30년에 가까운 항쟁 끝에 완전히 정복당하지 않고 국가 체제를 유지한 채 강화했다는 점에서, 몽골에 정복된 다른 국가들과 다른 고려만의 특수성으로 평가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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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간섭기

13세기 후반~14세기 중반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고려는 원의 부마국(사위 나라)이 되어 왕실 호칭과 관제가 격하되었고, 쌍성총관부·동녕부 등을 통해 영토 일부를 직접 지배당했으며, 정동행성을 통한 내정간섭을 받았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고려가 독립국의 지위를 유지하면서도 상당한 자주성을 침해당한 약 80년간의 시기로, 공민왕의 개혁으로 극복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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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의 반원자주개혁

1356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원의 세력이 약해진 틈을 타 친원파를 숙청하고 쌍성총관부를 무력으로 되찾았으며, 몽골식 풍습을 폐지하는 등 자주적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원 간섭기를 실질적으로 종식시킨 개혁이었으나, 개혁을 뒷받침하던 신돈이 실각하고 공민왕이 시해되면서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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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도 회군

1388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명나라의 철령위 설치 통보에 반발해 요동 정벌에 나섰던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려 개경으로 진군,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신진사대부와 손잡은 이성계가 실권을 완전히 장악하는 계기가 되어, 이후 조선 건국으로 이어지는 결정적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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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전법 실시

1391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권문세족이 독점하던 토지를 정리하고 신진 관료들에게 경기 지역의 수조권을 나눠주는 과전법을 시행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권문세족의 경제적 기반을 무너뜨리고 새 왕조를 뒷받침할 신진사대부의 경제적 토대를 마련한 개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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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의 조판

1236~1251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몽골의 침입을 부처의 힘으로 물리치고자 하는 염원을 담아, 강화도에서 8만여 장의 목판에 불경 전체를 새겼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오탈자가 거의 없는 정교함과 방대한 규모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고려 목판 인쇄문화의 정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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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심체요절 - 현존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

1377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찍어낸 불교 서적으로, 독일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인쇄(1450년경)보다 70여 년 앞섭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현재 프랑스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세계 최고(最古)의 현존 금속활자 인쇄물로 공인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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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건국

1392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위화도 회군으로 실권을 장악한 이성계가 정몽주 등 고려 왕조를 지키려던 세력을 제거하고 공양왕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아 새 왕조를 세웠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474년간 이어진 고려 왕조가 막을 내리고,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은 조선 왕조가 시작되는 전환점입니다.

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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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건국과 한양 천도

1392년, 한양 천도 1394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이성계(태조)가 국호를 조선으로 정하고, 정도전의 설계로 수도를 한양(오늘날 서울)으로 옮겨 경복궁을 비롯한 도성을 건설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유교(성리학)를 국가 통치이념으로 삼은 새 왕조가 시작되었으며, 이때 정한 한양이 오늘날까지 대한민국의 수도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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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의 왕권 강화

15세기 초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두 차례의 왕자의 난을 거쳐 즉위한 태종은 사병을 혁파해 군사권을 국왕에게 집중시키고, 전국 백성에게 호패를 지니게 하는 호패법을 시행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건국 초의 혼란을 수습하고 왕권을 안정시켜, 뒤이은 세종대의 문화적 전성기를 위한 기반을 닦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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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

1443년 창제, 1446년 반포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백성이 쉽게 익혀 쓸 수 있는 우리 고유의 문자를 세종이 직접 창제해(1443년) 『훈민정음』이라는 책으로 반포했습니다(1446년).

왜 알아야 할까요

한자를 몰라 글을 읽고 쓸 수 없던 일반 백성도 문자 생활을 할 수 있게 한 세계적으로도 독창적인 문자 창제로, 오늘날 한글의 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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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의 과학기술 발전과 4군 6진 개척

15세기 전반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측우기(강우량 측정), 앙부일구(해시계), 자격루(물시계) 등 과학기구를 제작하고, 압록강·두만강 유역에 4군과 6진을 설치해 국경을 오늘날과 거의 같은 형태로 확정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세종 시기는 조선 문물 제도의 전성기로 평가받으며, 이때 확정된 국경선이 오늘날 한반도 북쪽 경계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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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유정난과 세조의 즉위

1453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수양대군(세조)이 정변을 일으켜 어린 조카 단종을 보좌하던 김종서 등을 제거하고, 훗날 단종을 몰아내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왕위 계승을 둘러싼 조선 초의 대표적 정변으로, 이후 사육신의 단종 복위 시도 등 정치적 갈등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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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국대전의 완성

1485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세조 때 편찬을 시작해 성종 때 완성한 조선의 기본 법전으로, 국가 통치의 근간이 되는 각종 제도를 체계적으로 정리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조선왕조 500여 년간 통치의 근간이 된 법전으로, 유교적 통치 질서가 제도로서 완성되었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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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림의 정계 진출과 4대 사화

1498~1545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지방에서 성장한 사림 세력이 중앙 정계에 진출하며 기존 훈구 세력과 충돌해, 무오사화(1498)·갑자사화(1504)·기묘사화(1519)·을사사화(1545) 등 네 차례의 큰 정치적 숙청을 겪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거듭된 화를 입고도 사림은 결국 선조 대에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해, 이후 붕당정치 시대를 여는 세력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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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의 발발

1592~1593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명나라 정벌을 명분으로 조선을 침공해 20여 일 만에 한양이 함락되었으나,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이 한산도대첩 등에서 크게 승리하고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 전세를 뒤집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7년 전쟁의 시작으로, 국토가 크게 황폐해졌지만 이순신의 활약과 백성들의 의병 항쟁으로 나라를 지켜낸 사건으로 오늘날까지 널리 기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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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과 노량해전

1597~1598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강화 협상이 결렬되며 일본이 다시 침공했으나(정유재란), 이순신이 명량해전에서 13척의 배로 대승을 거두었고, 도요토미가 사망하며 철수하는 일본군을 노량해전에서 크게 무찌른 뒤 이순신 자신은 전사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7년에 걸친 임진왜란·정유재란이 완전히 끝난 사건으로, 이순신은 이 마지막 전투에서 순국해 조선을 대표하는 구국 영웅으로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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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의 중립외교

17세기 초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명이 쇠퇴하고 후금(훗날 청)이 떠오르는 국제 정세 속에서, 광해군은 명과 후금 사이에서 실리를 추구하는 중립외교를 펼쳤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실용적인 외교로 평가받지만, 명에 대한 의리를 중시하던 서인 세력의 반발을 사 인조반정의 명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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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반정

1623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서인 세력이 광해군의 중립외교와 폐모살제(인목대비 유폐, 영창대군 살해) 등을 명분으로 정변을 일으켜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를 왕위에 올렸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친명배금 정책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으나, 이는 결과적으로 후금(청)의 침입을 불러오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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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호란과 병자호란 - 삼전도의 굴욕

1627년, 1636~1637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후금이 먼저 침입한 정묘호란(1627년)에 이어, 청을 세운 뒤 군신관계를 요구하며 다시 침입한 병자호란(1636년) 때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항전하다 결국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항복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조선이 명에 대한 의리를 지키려다 오히려 청에 굴욕적으로 항복한 사건으로, 이후 북벌론이 대두되는 등 조선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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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당정치의 전개

17~18세기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사림이 동인·서인으로 갈라진 뒤 다시 남인·북인, 노론·소론 등으로 분화하며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붕당들이 경쟁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초기에는 상호 비판과 견제를 통한 건강한 정치 운영으로 기능했으나, 후기로 갈수록 특정 붕당의 권력 독점(세도정치)으로 변질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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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의 탕평책과 균역법

18세기 전반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붕당 간 대립을 완화하기 위해 인재를 고루 등용하는 탕평책을 펼치고, 백성의 군역 부담을 절반으로 줄이는 균역법을 시행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붕당정치의 폐해를 극복하려 한 개혁으로, 뒤이은 정조의 개혁정치로 이어지는 조선 후기 중흥기를 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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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개혁정치 - 규장각, 수원화성

18세기 후반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왕실 도서관이자 학술·정책 연구기관인 규장각을 설치해 인재를 길렀고, 신해통공(1791년)으로 상업 활동을 자유화했으며, 수원에 화성을 건설해 개혁정치의 거점으로 삼았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영조와 함께 조선 후기 문예부흥을 이끈 군주로 평가받으며, 수원화성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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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의 발전

17~19세기 (학계 통설)

무슨 일이 있었나요

공허한 성리학 논쟁에서 벗어나 현실 문제 해결을 중시한 학풍으로, 토지제도 개혁을 주장한 정약용, 상공업 진흥을 강조한 박지원 등이 활동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조선 후기 사회 모순을 개혁하려는 새로운 사상적 흐름으로, 근대적 사고의 맹아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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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도정치

19세기 초~중반 (학계 통설)

무슨 일이 있었나요

정조 사후 왕이 어린 나이에 즉위하면서 안동 김씨 등 왕의 외척 가문이 권력을 독점해 국정을 좌우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매관매직과 삼정(전정·군정·환곡)의 문란으로 백성들의 삶이 크게 피폐해져, 각지에서 민란이 일어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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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래의 난

1811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평안도 지역에 대한 차별대우와 세도정치의 폐단에 반발해 홍경래가 주도한 농민·상인 봉기가 일어나 한때 청천강 이북 지역을 장악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세도정치기 사회 모순이 폭발한 대표적 민란으로, 이후 임술농민봉기(1862년) 등 잇따른 봉기의 선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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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의 집권과 개혁, 쇄국정책

1863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어린 고종을 대신해 실권을 쥔 흥선대원군은 세도정치를 청산하고 경복궁을 중건했으며, 서양 열강의 통상 요구를 거부하는 강력한 쇄국정책을 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내정 개혁으로 왕권을 다시 세웠지만,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 쇄국정책은 결과적으로 근대화의 시기를 늦췄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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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양요와 신미양요

1866년, 1871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프랑스가 천주교 박해를 구실로 강화도를 침공했고(병인양요, 1866년), 미국은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구실로 강화도를 침공했으나(신미양요, 1871년) 조선군의 항전으로 모두 물러갔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서양 열강의 통상 요구를 두 차례 모두 무력으로 물리치며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이 한층 강화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개항기·일제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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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조약

1876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운요호 사건을 구실로 압박해온 일본과 맺은 조약으로, 부산·원산·인천 항구를 개항하고 조선이 자주국임을 명시했지만 일본에 유리한 치외법권을 인정한 불평등조약이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조선이 외국과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자 개항의 시작으로, 이후 서구 열강과의 잇단 조약 체결로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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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군란

1882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구식 군인들이 밀린 급료와 신식 군대(별기군)와의 차별대우에 반발해 일으킨 봉기로, 청나라 군대의 개입으로 진압되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이 사건을 계기로 청나라의 내정간섭이 본격화되었고, 일본과는 제물포조약을 맺어 배상금을 물고 일본군 주둔을 허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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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정변

1884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김옥균 등 급진 개화파가 일본의 지원을 받아 정변을 일으켜 근대적 개혁을 시도했으나, 청군의 개입으로 3일 만에 실패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조선 최초의 근대적 정치개혁 시도였으나, 외세(일본)에 의존한 한계와 청의 내정간섭 심화라는 결과를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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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운동

1894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전봉준을 중심으로 탐관오리의 수탈에 맞서 봉기한 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하는 등 세력을 떨쳤으나, 조선 정부가 청에 파병을 요청하고 일본까지 개입하면서 결국 우금치 전투에서 패배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반봉건·반외세를 함께 내건 대규모 농민 항쟁으로, 이 사건이 청일전쟁의 직접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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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전쟁과 시모노세키조약

1894~1895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두고 청과 일본이 전쟁을 벌여 일본이 승리했고, 시모노세키조약으로 청은 조선이 자주독립국임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동아시아의 패권이 청에서 일본으로 넘어가는 전환점이자, 이후 일본의 조선 침탈이 본격화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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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개혁

1894~1896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신분제와 과거제를 폐지하고 조혼을 금지하는 등 근대적 제도 개혁이 추진되었으나, 일본의 압력 아래 진행되어 자주성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신분제 폐지 등 조선 사회의 근대적 전환을 이룬 중요한 개혁이지만, 일본의 영향력 아래 이루어졌다는 이중적 성격을 지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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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사변 - 명성황후 시해

1895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일본이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명성황후(민비)를 눈엣가시로 여겨 자객을 보내 경복궁에서 시해한 사건입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일본이 타국의 왕비를 직접 시해한 국제적으로도 유례없는 만행으로, 이에 반발해 을미의병이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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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관파천

1896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을미사변으로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이 약 1년간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겨 정무를 보았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국왕이 외국 공사관에 피신한 사건으로 조선의 자주성에 큰 손상을 입혔으나, 이 시기를 거쳐 대한제국 선포로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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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선포와 광무개혁

1897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고종이 경운궁(덕수궁)에서 환구단을 짓고 황제로 즉위해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근대적 개혁(광무개혁)을 추진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자주독립국임을 대내외에 선포한 사건이지만, 열강의 각축 속에서 개혁은 한계를 보였고 결국 국권 상실로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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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

1904~1905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한반도와 만주의 지배권을 두고 러시아와 일본이 벌인 전쟁으로, 일본이 승리하며 열강으로부터 조선에 대한 우월적 지위를 인정받았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이 전쟁의 승리로 일본은 조선을 보호국화하고 이어 강제 병합할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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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조약(을사늑약) - 외교권 박탈

1905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일본이 군대로 궁궐을 포위한 위협적인 상황에서 강제로 체결시킨 조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통감부를 설치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고종의 정식 비준 없이 강제된 조약으로 국제법상 원천 무효라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며, 이에 항거해 민영환이 자결하고 을사의병이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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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 특사 파견과 고종의 강제 퇴위

1907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고종이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이준·이상설·이위종을 특사로 보냈으나 참석을 거부당했고, 이를 구실로 일본은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켰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대한제국의 마지막 외교적 저항이 좌절되고, 실질적으로 국권을 빼앗기는 마지막 단계로 접어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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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해산과 정미의병

1907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으로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해산 군인들이 의병에 합류하며 정미의병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해산된 군인들이 가세하면서 의병 항쟁이 이전보다 조직적이고 격렬한 무장투쟁으로 발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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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거

1909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안중근이 만주 하얼빈역에서 초대 조선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일본 침략의 원흉을 처단한 대표적인 항일 의거로, 안중근은 이후 뤼순 감옥에서 순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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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병합조약 - 국권 피탈

1910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일본이 대한제국의 통치권을 완전히 빼앗는 조약을 강제로 체결시켜, 대한제국이 멸망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1945년 광복까지 35년간 이어지는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사건으로, 이 조약 역시 강제성으로 인해 원천 무효라는 것이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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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단통치와 토지조사사업

1910년대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헌병경찰을 앞세운 강압적 통치를 펼치는 한편, 토지조사사업(1912~1918년)을 통해 신고하지 않은 토지나 소유권이 불분명한 토지를 총독부 소유로 편입시켰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많은 농민이 토지를 잃고 소작농이나 만주·연해주 이주민으로 전락하는 등, 식민지 수탈 체제가 본격화된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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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919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고종의 인산일(장례일)을 계기로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서울 탑골공원을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만세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일제강점기 최대 규모의 민족독립운동으로, 비폭력 만세운동임에도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을 받았지만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의 직접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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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3·1운동을 계기로 독립운동을 체계적으로 이끌 기관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중국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명시된 대로 오늘날 대한민국의 법통을 잇는 정부로 평가되며,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와 민주공화제가 이때 처음 채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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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통치로의 전환

1920년대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3·1운동에 놀란 일제가 헌병경찰제를 보통경찰제로 바꾸고 신문 발간을 일부 허용하는 등 유화적으로 보이는 통치 방식으로 전환했으나, 실제로는 경찰 수를 오히려 늘리고 친일파를 양성하는 등 민족분열 정책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겉으로는 완화된 듯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더 정교해진 식민통치 방식으로, 이 시기 친일 세력 육성이 이후 역사에 오래도록 영향을 끼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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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전투와 청산리대첩

1920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만주에서 홍범도가 이끄는 독립군이 봉오동에서, 김좌진·홍범도 연합부대가 청산리 일대에서 각각 일본군에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일제강점기 무장독립운동 사상 가장 큰 전과를 거둔 전투들로, 만주 독립군의 항일 무장투쟁 역량을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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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만세운동과 광주학생항일운동

1926년, 1929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순종의 장례일을 계기로 학생들이 주도한 6·10만세운동(1926년)에 이어, 한일 학생 간 충돌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확산된 광주학생항일운동(1929년)이 일어났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3·1운동 이후 침체되었던 대중적 항일운동이 학생층을 중심으로 다시 활성화된 사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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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말살통치

1930년대 후반~1945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중일전쟁 이후 전시체제에 돌입한 일제는 신사참배 강요, 일본식 성명 강요(창씨개명), 우리말 사용 금지 등 한민족의 정체성 자체를 말살하려는 정책을 강도 높게 시행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식민통치가 가장 폭압적으로 치달은 시기로, 이 시기의 강제동원 문제는 오늘날까지 한일 관계의 주요 쟁점으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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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애국단의 의거 - 이봉창·윤봉길

1932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김구가 조직한 한인애국단 소속 이봉창은 도쿄에서 일왕에게 폭탄을 던졌고, 윤봉길은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일본군 수뇌부를 향해 폭탄을 던져 여러 고위 인사를 살상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윤봉길 의거는 중국 국민당 정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적극 지원하는 계기가 되어, 이후 한중 연대 항일투쟁의 발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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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광복군의 창설

1940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중국 충칭에서 정규군 성격의 한국광복군을 창설했으며, 이후 연합군의 일원으로 태평양전쟁에도 참전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임시정부가 국제법상 정식 군대를 보유하게 되면서,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하는 등 자주적 독립을 위한 군사적 역량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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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강제동원 - 강제징용과 일본군 "위안부"

1930년대말~1945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전쟁 수행을 위해 수많은 조선인이 탄광·군수공장 등지로 강제징용되었고, 다수의 여성이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 동원되어 성노예 상태에 놓였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일본 정부와 군에 의한 조직적·강제적 동원이었다는 점이 국내외 학계와 유엔 인권기구 등에서 폭넓게 인정되고 있으며,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과 진상 규명은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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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광복

1945년 8월 15일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일본이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면서 35년간의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한민족이 해방을 맞이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연합국의 승리라는 외부적 요인과 더불어, 국내외에서 이어져온 독립운동의 성과가 결실을 맺은 날로, 오늘날 광복절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해방 이후·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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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과 미소 군정, 38선 분할

1945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명분으로 미국과 소련이 38도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남북으로 나누어 각각 군정을 실시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일시적 조치로 시작되었으나 냉전 대립 속에 남북 분단이 고착되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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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와 신탁통치 논쟁

1945~1946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미·영·소 3국이 최대 5년간 한반도를 신탁통치하기로 합의하자, 국내에서는 이에 반대하는 세력과 찬성(모스크바 협정 총체적 지지)하는 세력으로 나뉘어 극심한 좌우 대립이 벌어졌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신탁통치를 둘러싼 좌우 갈등이 격화되며 통일정부 수립 논의가 사실상 무산되고, 남북 분단이 굳어지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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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 총선거와 대한민국 정부 수립

1948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유엔 감시 아래 남한 단독으로 5·10 총선거가 실시되어 제헌국회가 구성되었고,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선포되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한반도 최초의 근대적 민주공화국이 수립된 사건으로, 이 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헌법에 명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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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

1948년 9월 9일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이어 북한 지역에서는 소련의 지원 아래 김일성을 수반으로 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한반도에 두 개의 정부가 각각 수립되면서 분단이 사실상 공식화된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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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사건

1948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단독선거 반대 시위를 계기로 촉발된 무력 충돌 과정에서 군경의 진압작전으로 다수의 무고한 제주도민이 희생되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2003년 정부 진상조사보고서를 통해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대통령이 사과한 현대사의 대표적 비극으로, 희생자 명예회복과 진상규명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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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1950~1953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기습 남침하며 시작되었고, 유엔군의 참전과 인천상륙작전(1950년 9월)으로 전세가 역전되었으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밀려 1·4후퇴를 겪었으며, 1953년 정전협정으로 휴전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남북 모두 수백만 명의 사상자를 낸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오늘날까지 종전이 아닌 정전 상태가 이어지며 분단을 고착시킨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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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1960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마산에서 발견된 김주열 학생의 시신이 도화선이 되어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자 결국 이승만이 대통령직에서 하야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학생과 시민이 힘을 합쳐 부정선거로 세워진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주의 혁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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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군사정변

1961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박정희 소장 등 일부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4·19혁명으로 들어선 장면 내각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헌정 질서를 무력으로 중단시킨 군사쿠데타로, 이후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어 18년간 장기집권하는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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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협정 체결

1965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한국과 일본이 국교를 정상화하는 협정을 체결하고, 일본은 무상 3억 달러·유상 2억 달러의 청구권 자금을 제공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경제개발 자금 확보라는 실리를 얻었지만, 개인청구권 문제(강제징용·위안부 등) 처리를 둘러싼 해석 차이로 오늘날까지 한일 간 갈등의 불씨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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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개발 5개년계획과 "한강의 기적"

1962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정부 주도의 수출 중심 공업화 정책이 연이어 추진되어 경부고속도로 건설(1970년), 포항제철 준공(1973년) 등을 거치며 한국 경제가 급속히 성장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전쟁 폐허의 최빈국이었던 한국이 짧은 기간에 산업국가로 도약한 성과로 세계적으로 주목받았지만, 노동 인권 억압과 정경유착 등의 그림자도 함께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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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체제 선포

1972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박정희가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한 뒤, 대통령 간선제와 긴급조치권 등을 담은 유신헌법을 공포해 사실상 영구집권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민주주의와 삼권분립을 심각하게 훼손한 권위주의 통치체제로, 이에 저항하는 민주화운동이 1970년대 내내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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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민주항쟁과 10·26사건

1979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부산·마산 지역에서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난 직후,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하며 유신체제가 막을 내렸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18년간 이어진 박정희 장기집권이 갑작스럽게 종결된 사건으로, 이후 짧은 "서울의 봄"을 거쳐 신군부의 등장으로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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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사태

1979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 세력이 계엄사령관을 체포하는 등 군사반란을 일으켜 군권을 장악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박정희 사망 이후 되찾을 뻔했던 민주주의가 다시 좌절되는 계기가 된 군사반란으로, 이듬해 5·18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으로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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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1980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신군부의 비상계엄 전국 확대에 항의하는 광주 시민들의 시위를 계엄군이 무력으로 진압하는 과정에서 많은 시민이 희생되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국가 폭력에 맞선 시민들의 저항이었다는 것이 재판과 진상조사를 통해 공식적으로 확립된 역사적 사실이며, 1997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고 관련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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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민주항쟁과 6·29선언

1987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대학생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이한열의 최루탄 피격을 계기로 전국적인 민주화 시위가 확산되자, 여당 대통령 후보 노태우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수용하는 6·29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독재체제를 시민의 힘으로 무너뜨리고 대통령 직선제를 되찾은 사건으로, 오늘날 대한민국 민주주의 헌정체제의 직접적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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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올림픽 개최

1988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동서 냉전 진영이 함께 참가한 제24회 하계올림픽을 서울에서 성공적으로 개최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한국의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세계에 알리며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크게 높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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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유엔 동시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

1991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냉전 종식의 흐름 속에 남북한이 유엔에 각각 별개 회원국으로 동시 가입했고, 상호 체제 인정과 화해·불가침을 담은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남북이 국제사회에서 각각 독립된 국가로 공식 인정받는 동시에, 평화적 공존을 모색한 중요한 이정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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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외환위기

1997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외환보유고 고갈로 국가부도 위기에 몰린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 구제금융을 요청했고, 이후 대대적인 기업 구조조정과 대량 실업을 겪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고도성장기 한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점이 드러난 사건으로, 국민들의 "금 모으기 운동" 등 위기 극복 노력 끝에 2001년 예정보다 앞당겨 구제금융을 조기 상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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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

2000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에서 분단 이후 최초로 정상회담을 갖고 남북 화해협력 방안을 담은 6·15공동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분단 55년 만에 처음으로 남북 최고지도자가 직접 만난 역사적 사건으로, 이후 개성공단·금강산관광 등 남북 경제협력 사업으로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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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

2002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한국과 일본이 공동 개최한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아시아 국가 최초로 4강에 진출했으며, 거리 곳곳에서 시민들의 자발적인 "붉은악마" 응원 물결이 펼쳐졌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스포츠를 통해 국민적 자긍심과 단합을 이끌어낸 사건으로, 이후 한국의 국가 이미지 제고에도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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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선언

2018년 (문헌 기록)

무슨 일이 있었나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 정착 노력을 담은 판문점선언을 발표했으며, 그해 두 차례 더 정상회담이 이어졌습니다.

왜 알아야 할까요

11년 만에 재개된 남북정상회담으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기대를 높였던 사건으로, 이후 실질적 진전은 여러 변수 속에 정체된 상태입니다.

사료를 읽는 법: 세 가지 사례

위의 근거 표시가 실제로 어떻게 쓰이는지, 이 페이지에 실린 사건 세 가지로 살펴봅니다. 모두 위 사건 카드에서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며, 더 깊은 정보는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같은 공공 자료에서 확인하시길 권합니다.

사례 1. 고조선의 건국: 신화가 전하는 숫자

기원전 2333년은 『삼국유사』에 실린 단군신화에서 나온 연대입니다. 사건 카드에도 '전승 연대'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 숫자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그때 이미 고조선이라는 국가가 있었다"는 뜻이 되지만, 고고학적으로 그 시점에 국가가 존재했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반면 같은 고조선에 관해 중국 『한서』 지리지에는 8조법의 일부 내용이 전하고, 위만조선의 성립(기원전 194년)과 멸망(기원전 108년)은 '문헌 기록'으로 분류됩니다. 즉 고조선은 건국 연대는 전승, 후기의 모습은 문헌이라는 서로 다른 근거 위에 서 있습니다. 배울 점은 "고조선이 있었는가"와 "언제 시작되었는가"가 서로 다른 질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례 2. 삼국의 건국 연대: 기록된 해와 국가가 된 해

신라 기원전 57년, 고구려 기원전 37년, 백제 기원전 18년은 모두 『삼국사기』가 전하는 건국 연대로, 이 페이지에서는 '전승 연대'로 표시합니다. 그런데 학계의 일반적 견해는 이 나라들이 중앙집권적 국가 체제를 갖춘 때를 이보다 늦게, 고구려는 1~2세기, 백제와 신라는 3~4세기 무렵으로 봅니다. 반면 4세기 후반 백제 근초고왕의 전성기나 고구려 소수림왕의 체제 정비(372년)는 '문헌 기록'으로 분류됩니다. 연구자들은 건국 기록을 그대로 믿기보다 유적·유물과 대조하며 읽습니다. 여기서 배울 점은 연표의 첫 줄이 가장 불확실한 줄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례 3. 직지와 팔만대장경: 기록물 둘, 기술 둘

고려는 인쇄 문화에서 두 가지 성취를 남겼습니다. 팔만대장경은 몽골의 침입을 부처의 힘으로 물리치려는 염원을 담아 강화도에서 8만여 장의 목판에 불경 전체를 새긴 것으로, 이 페이지는 조판 시기를 1236년부터 1251년으로 적었습니다. 직지심체요절(1377년)은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찍은 불교 서적이며, 현재 프랑스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둘 다 '문헌 기록' 사건이지만 방식이 다릅니다. 목판은 한 번 새겨 두면 같은 책을 반복해서 찍기에 알맞고, 금속활자는 낱글자를 조합해 여러 책을 찍는 방식입니다. 또 직지가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이라는 말은 지금 남아 있는 것 중 가장 오래되었다는 뜻이지, 인쇄 자체의 시작을 뜻하지 않는다는 점도 구분해서 읽어야 합니다.

사실과 해석을 구분했습니다

이 페이지는 고증 가능한 사실 위주로 구성했습니다. 5·18민주화운동의 성격이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의 강제성처럼 진상조사와 재판, 국내외 학계를 통해 이미 정설로 확립된 사안은 그 정설에 따라 서술했으며, 특정 인물이나 정치 세력에 대한 전반적인 공과 평가처럼 오늘날에도 해석이 엇갈리는 부분은 가능한 한 사건 자체의 사실관계만 전달하고 가치 평가를 배제했습니다.

한국사를 이해하며 읽는 순서

  1. 근거 표시부터 봅니다. 카드의 날짜 옆 괄호가 '전승 연대'나 '고고학적 추정'이면 그 숫자를 정확한 연도로 외우지 말고 "대략 이 무렵"으로 기억합니다.
  2. 원인과 결과를 한 문장으로 적습니다. 예를 들어 '몽골의 침입 → 강화 천도와 삼별초 항쟁 → 원 간섭기'처럼 앞뒤 카드를 이어 읽으면 연표가 이야기가 됩니다.
  3. 같은 시기의 주변 나라를 함께 봅니다. 거란·몽골·청처럼 한국사의 전환점 상당수가 동아시아 질서와 얽혀 있습니다. 한국사·세계사 연표 비교가 이를 28가지 연결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4. 사건별 주소를 활용합니다. 다른 글에서 이 페이지로 연결될 때는 사건별 주소(예: 고조선의 건국)로 열려 해당 카드가 강조됩니다.

흔한 오해와 정정

한계와 더 알아볼 점

이 페이지는 112개 사건만 선별했으므로 지역사·생활사·여성사·경제사처럼 사건 중심 서술에서 빠지기 쉬운 영역은 충분히 다루지 못합니다. 고조선의 중심 위치와 영역처럼 학계에서 견해가 갈리는 주제도 있고, 고고학 발굴이 더해지면 선사시대와 고대의 연대는 앞으로도 조정될 수 있습니다. 근현대사에서는 사건 평가를 둘러싼 논쟁이 현재진행형이어서, 이 페이지는 사실관계 위주로 서술하는 데 그쳤습니다. 한 사건을 깊이 알고 싶다면 우리역사넷의 해당 항목과 개설서를 함께 읽으세요.

연대 표기에 관한 안내

이 페이지의 각 사건에는 연대의 근거를 함께 표시했습니다. '문헌 기록'은 『삼국사기』·『고려사』 등 역사서에 구체적으로 기록된 연대이고, '전승 연대'는 『삼국유사』의 단군신화나 삼국 건국 설화처럼 후대에 기록된 전승에 따른 연대로 고고학적으로 확정된 사실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고조선의 건국 연대 (기원전 2333년)나 삼국의 건국 연대(신라 기원전 57년, 고구려 기원전 37년, 백제 기원전 18년)는 『삼국유사』·『삼국사기』의 전승 연대이며, 실제 이 나라들이 중앙집권적 국가 체제를 갖춘 시점은 고고학적으로 이보다 늦게 보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 견해입니다. '고고학적 추정'은 유적·유물을 근거로 학계가 추정한 시기, '학계 통설'은 여러 사료를 종합해 학계에서 폭넓게 받아들여지는 시기를 뜻합니다.

이어서 읽을 가이드

같은 시기 세계 다른 지역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살펴보려면 세계사 총정리와, 두 역사를 시대별로 연결한 한국사·세계사 연표 비교를 참고하세요. 시험 준비가 목적이라면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초 가이드와공부법 가이드로 이어 가면 좋고, 한 사건을 더 깊이 보려면 6·25전쟁 개요도 있습니다.

유의사항

이 페이지는 한국사의 핵심 흐름을 소개하는 교육용 콘텐츠이며, 국사편찬위원회 등이 정리한 통설과 교과서에서 널리 다루는 내용을 기준으로 정리했습니다. 지면상 모든 사건을 다룰 수는 없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기본적으로 알아두면 좋을 핵심 사건 위주로 선별했으므로, 더 깊이 있는 학습은 전문 역사서나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등을 참고하시길 권장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고조선은 정말 기원전 2333년에 세워졌나요?

기원전 2333년은 『삼국유사』에 실린 단군신화에 따른 전승 연대이며, 고고학적으로 이 시점에 고조선이라는 국가가 존재했음을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한 고조선이라는 정치체가 기원전 여러 세기에 걸쳐 만주와 한반도 서북부에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는 중국 사서 등을 통해서도 확인됩니다.

삼국의 건국 연대도 정확한가요?

신라(기원전 57년)·고구려(기원전 37년)·백제(기원전 18년)의 건국 연대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전승 연대입니다. 고고학계에서는 이 나라들이 국가 체제를 갖춘 것은 이보다 늦은 시기(고구려는 1~2세기, 백제·신라는 3~4세기 무렵)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입니다. 이 페이지에서는 두 관점을 모두 알 수 있도록 전승 연대를 표기하되 '전승 연대'라는 근거를 명시했습니다.

왜 조선 후기와 근현대사 비중이 더 높나요?

시대가 가까워질수록 사료가 풍부하고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사건이 많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페이지는 특정 시대를 더 중요하게 여기려는 의도가 아니라, '반드시 알아야 하는' 사건 기준으로 선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타난 결과입니다.

구석기 '약 70만 년 전'도 확정된 숫자인가요?

이 페이지는 선사시대 연대를 '고고학적 추정'으로 분류합니다. 유적의 지층과 출토 유물을 분석해 정한 범위 값이라는 뜻이며, '약'이나 '경'이 붙은 표기는 그 불확실성을 나타냅니다. 새로운 발굴과 분석법에 따라 조정될 수 있습니다.

을사조약과 을사늑약은 같은 사건인가요?

같은 1905년의 사건을 가리키는 두 가지 명칭입니다. 이 페이지는 사건 카드에 '을사조약(을사늑약)'으로 함께 적어 두었습니다. 외교권을 빼앗긴 강제적 성격이 사건의 핵심이므로, 명칭을 접할 때는 이름보다 어떤 상황에서 체결되었는지를 함께 확인하세요.

이 112개만 알면 한국사를 다 아는 건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목록은 흐름을 잡기 위한 뼈대입니다. 사건 사이의 원인과 결과, 당시 사람들의 생활, 제도의 변화 같은 내용은 카드 몇 줄로는 담기 어렵습니다. 뼈대를 먼저 익힌 다음 관심 있는 시대의 개설서나 우리역사넷으로 살을 붙이는 방식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