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대공황(1929) 원인과 영향

1929년 뉴욕 증시 폭락이 어떻게 전 세계 경제를 무너뜨렸는지 알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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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이란

1929년 미국에서 시작해 1930년대 내내 전 세계로 번진,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길고 심각했던 경제 불황입니다.

설명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기업이 줄줄이 문을 닫고 실업자가 폭증했으며, 그 여파는 1930년대 후반까지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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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목요일과 주가 폭락

1929년 10월 24일 "검은 목요일"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대량 투매가 시작되며 주가가 급락했습니다.

설명

당시 많은 투자자가 주식 가치의 일부만 내고 나머지는 빚으로 사들이는 신용거래(마진 매수)를 이용하고 있었는데, 주가가 떨어지자 이 빚을 갚기 위한 강제 매도가 이어지며 하락 폭을 더 키웠습니다. 9월 고점 대비 11월 저점까지 주가는 약 33% 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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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락 전에 이미 쌓여 있던 거품

폭락이 있기 전부터 생산은 둔화되고 실업은 늘고 있었지만, 주가만 계속 오르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설명

실제 기업 실적으로 뒷받침되기 어려운 수준까지 주가가 오른 상태였기 때문에, 작은 악재만으로도 투자 심리가 급격히 얼어붙을 수 있는 취약한 구조였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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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의 연쇄 파산과 신용경색

예금을 찾으려는 사람이 한꺼번에 몰리는 뱅크런이 이어지며 수천 개의 은행이 문을 닫았습니다.

설명

은행이 무너지면 그 은행에 돈을 맡긴 사람과 기업이 함께 타격을 입고, 시중에 돌아야 할 돈이 마르면서 위기가 주식시장을 넘어 실물경제 전반으로 번져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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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무역이 부른 역효과

미국은 스무트-홀리 관세법으로 수입품 관세를 크게 올렸지만, 다른 나라들도 보복관세로 맞서면서 세계 무역 자체가 크게 위축되었습니다.

설명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던 조치가 오히려 국제 교역을 얼어붙게 만들어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를 더 심화시킨 사례로 흔히 언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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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이 남긴 숫자들

1933년 미국의 실업률은 약 25%까지 치솟아 노동 인구 네 명 중 한 명이 일자리를 잃은 셈이었습니다.

설명

같은 기간 국내총생산은 크게 줄어들고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고점 대비 큰 폭으로 폭락했으며, 수많은 은행이 파산하는 등 경제 전반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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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딜 정책의 등장

1933년 취임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경제에 개입하는 뉴딜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설명

공공사업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은행과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등, 이전까지와는 다른 정부 역할을 보여준 정책으로 평가받습니다. 이 시기 미국은 금본위제에서도 벗어나는 등 통화 정책에도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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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은 언제 끝났나

뉴딜 정책이 경기를 어느 정도 회복시켰지만, 대공황을 실질적으로 끝낸 결정적 계기는 제2차 세계대전에 따른 군수 생산 확대였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설명

전쟁 물자 생산을 위해 공장이 다시 풀가동되고 실업자가 대거 고용되면서 미국 경제는 194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회복세로 돌아섰습니다.

금본위제 이탈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대공황 시기 각국이 금본위제에서 이탈한 배경을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금본위제의 역사를 참고해보세요.

버블(거품) 붕괴 사례와는 어떻게 다른가요?

역사 속 여러 경제 거품 붕괴 사례가 궁금하다면 유명한 경제 버블 사례도 함께 살펴보세요. 이 페이지는 그 중에서도 대공황이라는 하나의 사건을 원인부터 전개, 대응 정책까지 깊이 있게 다룹니다.

자주 묻는 질문

대공황은 미국에서만 일어난 일인가요?

아니요. 미국에서 시작되었지만 국제 무역과 금융이 서로 얽혀 있었기 때문에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 여러 나라로 빠르게 번져나갔습니다.

뉴딜 정책만으로 대공황이 끝났나요?

뉴딜 정책은 경기를 어느 정도 회복시키는 데 기여했지만, 완전한 종식은 제2차 세계대전에 따른 대규모 군수 생산 확대가 결정적 계기였다는 평가가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