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즈텍 문명과 잉카 문명 비교 정리

콜럼버스 이전 아메리카 대륙을 수놓은 두 문명을 알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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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텍 제국이란

14~16세기 현재의 멕시코 중부 고원지대를 중심으로 번영한 메소아메리카 문명입니다.

설명

여러 도시국가가 동맹을 맺은 "삼각동맹" 체제로 세력을 키웠으며, 정교한 달력 체계와 건축, 시장 경제를 갖춘 발달된 사회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수도는 텍스코코 호수 위에 세워진 계획도시 테노치티틀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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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노치티틀란: 호수 위의 수도

인공섬과 운하로 이루어진 도시로, 전성기에는 인구가 수십만 명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설명

호수 바닥의 진흙을 쌓아 만든 "치남파"라는 수상 경작지에서 옥수수 등을 재배해 대도시의 식량을 충당했습니다. 오늘날의 멕시코시티는 이 테노치티틀란의 옛 터 위에 세워진 도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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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텍의 종교와 달력

태양신을 비롯한 여러 신을 섬겼고, 서로 다른 두 종류의 달력을 함께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설명

365일 주기의 태양력과 260일 주기의 의례용 달력을 함께 사용해 농사와 종교 행사의 시기를 정했습니다.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의식도 종교 생활의 중요한 부분이었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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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 제국이란

15~16세기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맥을 따라 형성된, 아메리카 대륙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제국입니다.

설명

최고 통치자 "사파 잉카"를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 체제였으며, 전성기 영토는 오늘날의 페루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수천 km에 걸쳐 뻗어 있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수도는 페루의 고산 도시 쿠스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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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망과 키푸(결승문자)

문자 체계 없이도 매듭으로 정보를 기록하는 "키푸"와 광대한 도로망으로 넓은 제국을 효율적으로 운영했습니다.

설명

"카팍냔"이라 불리는 도로망을 따라 파발꾼("차스키")들이 이어달리기 방식으로 소식을 전했고, 색깔과 매듭 위치·개수로 수량 등 정보를 기록하는 키푸를 행정에 활용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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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추픽추

15세기 무렵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잉카의 산악 도시 유적으로, 오늘날 대표적인 세계 유산 중 하나로 꼽힙니다.

설명

해발 2,000m가 넘는 능선 위에 정교한 석조 건축물이 남아 있으며, 스페인 정복자들에게 발견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가 1911년 서구 학계에 재발견되며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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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정복

에르난 코르테스가 1521년 아즈텍을,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1533년 잉카를 각각 정복하며 두 문명 모두 스페인의 지배 아래 놓였습니다.

설명

유럽에서 전해진 천연두 등 전염병의 확산, 아즈텍에 반감을 가진 주변 원주민 세력과의 동맹, 금속 무기와 말의 활용 등 여러 요인이 정복 과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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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까지 남은 유산

옥수수·감자·토마토·카카오 등 아메리카 원산 작물이 이 문명들을 통해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설명

나우아틀어(아즈텍)와 케추아어(잉카) 같은 언어, 그리고 이를 사용하는 후손 공동체가 오늘날 멕시코와 안데스 지역에 여전히 남아 있으며, 유적지들은 세계적인 관광지이자 연구 대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마야 문명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아즈텍, 잉카와 함께 아메리카 3대 문명으로 자주 묶이는 마야 문명은 이보다 훨씬 이른 시기부터 중앙아메리카에서 번영했습니다. 마야 문명이 궁금하다면마야 문명 쇠퇴 이유도 함께 참고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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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아즈텍과 잉카는 서로 교류가 있었나요?

두 문명은 각각 지금의 멕시코와 페루 지역으로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직접적인 교류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옥수수 재배 등 아메리카 대륙에서 공통적으로 발전한 농경 문화의 영향은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두 문명 모두 문자를 사용했나요?

아즈텍은 그림문자에 가까운 상형문자 체계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잉카는 별도의 문자 체계 없이 매듭으로 정보를 기록하는 "키푸"를 활용해 행정을 운영했다고 전해집니다.